빈곤의 개념
빈곤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사회문제 중의 하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빈곤 문제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1997년 말의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커다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절대빈곤층이 차상위 계층 이상으로 상승하여 실질적으로 빈곤을 벗어나는 '빈곤 탈출률'은 불과 6%로 나타났다. 이는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들이 '빈곤의 함정'에 빠져 쉽게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여 빈곤이 만성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빈곤의 함정' 현상이 지속되면 계층의 양극화가 심각해져 사회불안을 증가시키게 된다. 또한 빈곤 문제는 대부분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여러 연구에서 빈곤은 이를 경험하는 모든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아동기의 빈곤 경험은 특히 그 해악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빈곤은 아동에게 정상적인 발달과업을 성취하는 데 장애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장애들이 누적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빈곤이 세대 간에 대물림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빈곤 문제가 주는 심각한 해악-부모 세대 빈곤의 만성화와 자식 세대로의 빈곤의 대물림- 때문에 빈곤문제 해결은 모든 국가에서 사회복지제도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빈곤이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의 부족 상태'로 정의되어 왔다. 곧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빈곤 여부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초창기에는 이렇게 절대적 빈곤 개념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자원의 절대적 기준을 정하고 그 이하를 빈곤으로 정의하였으나, 이는 차차 상대적 빈곤 개념으로 그 논의를 보완해 왔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 개념도 기준의 상대성이란 측면에서 차별성이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이라는 절대적 빈곤의 변별기준과는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빈곤에 대한 이런 정의로는 충분한 교육 기회나 쾌적한 환경에 대한 욕구 미충족 등을 다룰 수 없었기 때문에 궁핍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전통적 빈곤 개념 외에도 삶의 질이라는 개념을 포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화폐의 구매력으로 치환될 수 있는 개념으로, 최근의 빈곤현상을 충분하게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최근의 빈곤은 심리적, 정서적 부적응과 의욕 상실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최근의 빈곤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각종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의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 노동에 참여할 의욕을 잃고 복지에 의존하려고 할 경우, 전통적 빈공 정의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에서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빈곤 현상을 정의하기 위해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소외와 배제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주류사회로부터 단절된 상황'을 빈곤으로 정의하는 사회적 배제 논의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빈곤의 정의 자체에 이미 빈곤 구조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즉, 구조적으로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는 현상을 빈곤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인식하면서, 그 해법으로는 사회자본 개발, 가족지지, 참여 기회 제공 등과 같은 다차원적인 접근은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빈곤 혹은 빈곤 극복 정책이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 결핍 현상을 중시하여 이전 지출 위주의 소득보장정책을 추구하였다면, 사회적 배제 혹은 사회적 배제 극복 정책은 단순한 경제적, 재정적 측면과 아울러 사회적, 심리적 측면에도 관심을 가지며 또한 빈곤에 대한 현상적 측면 외에도 빈곤의 원인, 빈곤으로의 과정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결국 빈곤에 대한 예방적, 포괄적, 장기적인 정책의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빈곤이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
거시적 차원에서 빈곤은 사회해체를 낳는 심각한 문제다. 어느 지역사회에서 다수의 빈민이 존재한다는 것은 빈곤하지 않은 다른 계층과 집단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빈곤이 원인이 되어 유발되는 비행과 범죄의 희생자는 지역사회의 주민이고,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사회복지제도와 서비스는 지역사회와 국가에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빈민집단이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고 결국은 사회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점이다.
미시적 차원에서 빈곤은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과 가족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생존 자체의 심각한 문제다. 이들에게 빈곤은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집이 없거나 집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결하고 유해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고, 부적절한 영양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어 심한 질병을 앓게 되거나 삶을 일찍 마감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또한 이들은 물질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항상 굴욕과 열등감을 갖고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심한 경우 사회의 도덕과 규범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빈곤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것이 비행, 범죄, 알코올중독 등 수많은 병리 현상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다. 특히 빈곤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발육부진, 발달지체 등과 같은 신체 발달의 문제에서 저지능, 학업 부진, 학교 중퇴 등과 같은 인지발달의 문제, 우울과 불안 등과 같은 내면화된 문제 및 공격성,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반사회적 행동 등과 같은 외현화된 문제 등을 포함한 심리사회 발달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동기 결식문제에서 비롯된 영양의 결핍이나 불균형은 성인기에 골다공증, 위암, 뇌졸중, 당뇨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철분결핍성빈혈은 인지능력의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연구들은 간접적이나마 빈곤계층의 아동이 장기적으로 열악한 건강 수준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또한 빈곤은 아동을 다양한 환경적 위험에 노출하기 때문에 비행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발달상의 문제는 곧 빈곤의 세대 간 전이 가능성과 연결되므로 빈곤가정에서의 아동발달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빈곤아동은 가정의 부적절한 환경으로 인해 사회 정서적인 어려움이나 학습·학교생활에서의 부적응 행동 등이 다른 계층의 아동보다 높게 나타나지만 아동기 초기에는 그 문제의 정도가 현저하지 않으므로 자칫 간과하기 쉽다. 이에 따라 청소년기에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